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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연애보다 관계, 요즘 사람들의 로맨스를 말하다_연애빠진로맨스

by 영화가조아요 2025. 4. 9.

연애빠진로맨스

2021년 개봉한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전종서와 손석구라는 두 배우의 현실적인 연기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겪는 관계의 복잡성과 연애의 모호함을 담백하게 풀어낸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기존의 이상적인 연애 서사가 아닌, '관계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요즘식 만남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질문하게 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영화이며,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쉽게 닿지 못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솔직하고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감정선을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보겠습니다.

1. 연애가 아닌 관계, 요즘 시대의 연결 방식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제목에서부터 현대의 감정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습니다. 예전의 로맨스 영화들이 사랑의 설렘, 이별의 아픔 같은 강렬한 감정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 영화는 “애매하고 모호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천천히 탐색합니다. 극 중 ‘자영’과 ‘우리’는 소개팅 앱을 통해 만나며, 그들의 시작은 전통적인 연애 문법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연애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와의 감정적 연결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연애는 부담스럽지만,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이중적인 감정.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하며, 관계의 정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SNS, 소개팅 앱, 잠깐의 만남 후 이어지지 않는 연락 등, 오늘날 사람들의 연애 방식은 그야말로 '관계 중심적'이고, 그만큼 복잡하고 얕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관계'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의 감정 풍경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2. 진심을 말하지 않는 시대, 캐릭터로 보는 회피의 감정

‘연애 빠진 로맨스’의 자영(전종서)은 직설적이고 거침없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깊게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와 연결된 우리(손석구)는 무기력하고 솔직하지만 역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진심을 말하지 못합니다.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회피형 관계’의 전형입니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런 감정의 회피를 단순히 연기나 대사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묘한 표정과 어색한 침묵,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두는 행동들로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연애보다 감정 표현 자체가 더 어려운 시대,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냅니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말할 줄 몰라서, 혹은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피하는 모습은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특히 이 둘의 대화는 종종 진심을 빙빙 돌려 말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온도차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를 화려한 사건이나 갈등이 아닌, 아주 작은 '솔직하지 못함'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3. 일상성과 현실감, 장면이 아닌 분위기로 전하는 감정

‘연애 빠진 로맨스’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대화와 일상 속에서 감정을 쌓아나가는 영화입니다. 카페, 자취방, 출판사 사무실 같은 배경은 실제 서울에서 살아가는 20~30대의 현실적인 공간을 충실히 재현하며, 영화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영과 우리는 아주 사소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또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영화는 음악이나 편집으로 감정을 부풀리지 않고, 오히려 적당히 건조하게 표현하며 그 안의 여백을 관객이 채우게 만듭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자영이 홀로 남겨지는 장면에서는 배경 음악도 거의 없이 그녀의 숨소리와 조용한 공간만이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처럼 연애 빠진 로맨스는 화려한 고백이나 극적인 이별 없이도, 감정의 진폭을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일상성과 정적인 연출은 우리 주변의 감정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줍니다.

4. 우리 시대의 로맨스가 남기는 질문

이 영화는 로맨스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로맨스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사랑은 하고 싶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너무 깊이 얽히는 건 피하고 싶은 심리. 연애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연애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기 싫은 사람들이 늘어난 이 시대에, 이 영화는 가장 현실적인 거울을 보여줍니다. 자영과 우리의 만남은 실패로 끝난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열린 결말을 택하면서 관계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관객에게 맡깁니다. 이 영화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와의 감정이 어디로 향하든,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연애는 빠졌지만, 감정은 충분히 있었고, 그 안에 있었던 진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건넵니다. 연애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일지도 모릅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요즘 사람들의 연애가 아닌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보다, 감정의 흐름과 관계의 결을 더 중요하게 다루며, 현대인의 연애 방식과 감정 구조를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연애에 지친 사람, 혹은 연애를 시작하고 싶은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영화입니다. 지금 우리의 연애는 어디쯤일까요? 어쩌면 ‘빠졌지만 남아 있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